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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차기 정부 인수위에서 발표한 '영어 몰입 교육' 정책에 대해 현재 대부분의 언론은 '그것이 과연 가능한가?',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되풀이하며 '실현 방법과 그 가능성'만을 문제 삼을 뿐, 정작 '영어 몰입 교육' 정책 자체가 안고 있는 문제점은 간과하고 있다. 언론의 이러한 태도는 '영어 몰입 교육' 그리고 그것의 필연적인 귀결이 될 '영어 공용화'에 대한 암묵적인 동의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처럼 비친다. 그래서 최근 보도 자료를 보면, '왜 모든 국민이 반강제적으로 영어를 학습해야 하는지?', '영어 몰입 교육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은 실종된 채 '현재 일반 교과 교사들이 영어로 강의할 능력이 부족하다.', '그래서 교사들의 반발이 심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식의 보도, 결국 문제는 무능하고 준비 안 된 학교와 교사에 있다는 식의 보도만 난무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겨낭하지 못하고, 권력자의 정책을 비판적 검토 없이 받아쓰기하는 언론의 행태는 가소롭다 못해 측은하다. 인수위가 쏟아내는 무수한 정책을, 중심을 잡고 그것의 장단점을 냉정하게 분석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견인되고 있는 것이 현재 언론의 모습인 것이다. 혼란과 폭주의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되어 주는 것이 철학일 텐데 작금의 언론이 이처럼 휘둘리는 것은 '철학의 부재'라는 한국 언론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영어 몰입 교육' 정책에 대해서 우리가 토론해야 할 쟁점은 '실현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즉 '정당성'의 문제이다. '영어 몰입 교육'은 과연 바람직한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겠는가?

  이 정책이 실현되면, 2010년에는 중고등학교 영어 수업이 전부 영어로 진행되고, 이후 점진적으로 영어로 하는 수업이 일반과목에까지 확대될 것이라고 한다. 중고등학교의 모든 교과가 절반은 영어 교과가 되는 셈이다. 표현의 부자유로움과 교사 학생 간 의사소통의 장애로 수업의 질이 저하될 우려가 있다는 점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더 근원적인 문제는 모국어 습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이것이 결국 모국어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데 있다. 학교는 아이들이 다양한 지식을 배우는 곳이기도 하지만, 모국어 교육의 측면에선 수준 높은 국어를 학습하는 곳이기도 하다. 언어, 수학, 과학, 역사, 사회, 음악, 미술 등 여러 학문 분야에서 구축해 놓은 고급 지식을 세련된 모국어로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수준 높은 모국어를 체험하고 습득하는 것이다.

  '영어 몰입 교육'이 본격적으로 실시되면, 소중한 성장기에 우리 청소년들이 세련된 모국어를 배울 길이 막히게 될 것이다. 온갖 상업주의와 선정주의로 오염된 매스미디어와 부박한 일상생활을 통해서나 모국어의 학습이 이루어질 따름일 테니, 오래지 않아 국민의 언어 생활은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병들고 황폐해지지 않겠는가.

  인간에게 모국어는 자신을 표현하고 세상의 모든 지식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소중한 구실을 한다. 모국어를 통해 인간은 그 사유세계와 감성을 형성하고, 그 안에서 삶과 세상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모국어가 미성숙한 상태에서 받아들이는 지식은 정밀할 수 없고, 자신의 사상과 정서를 세련되고 풍부한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람은 그 정신이 높아질 수 없는 법이다. '영어 몰입 교육'이 초래할지도 모르는 재앙 가운데 하나는 이렇게 인간 정신의 성숙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모든 학생들에게 영어 교육를 강제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이다. 학교 제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탓에 그 '강압성'이 은폐되고 있을 뿐이지, '영어 몰입 교육'은 명백히 '강압적인' 정책이다. 학생들 가운데에는 외국인과 원활히 의사소통할 수 있을 만큼의 영어 학습을 목표로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읽기'만 잘해도 충분히 만족하는 사람도 있다. 학습자의 요구 수준이 저마다 다른 것이다. 비단 영어 과목만의 일이겠는가. 가령 '체육' 교육에서도, 전문선수 수준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학생이 있는 반면, 평생 건강을 유지하고 즐거운 취미를 갖기 위한 목표에서 체육 교육을 필요로 하는 학생도 있다. 그런데 만일 '체육' 과목을 배우는 모든 학생들에게 전문 선수 수준의 훈련을 요구한다면, 이는 넌센스를 넘어 '개인차'를 무시한 엄연한 폭력일 것이다. 현재 이명박 차기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영어 몰입 교육' 정책도 본질적으로 그와 다를 바 없다. 그러니 차기 정부가 추진하는 중등 영어 교육 정책은 '영어 몰입 교육'이 아니라 '영어 강압 교육'이라 불러야 그 '폭력적' 성격에 더 부합한 명명이 될 터이다.

  영어 과목이든 체육 과목이든 공교육의 목표는 '더불어 삶에 필요한 기능과 지식'을 습득하는 데 있다. 중등교육과정에서는 아이들에게 '공생의 가치'를 실현하는 교육을 제공하면 된다. 그 나머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기술'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맡겨야지 공교육 안에서 해결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대한민국이라는 주권국가에서 나고 자라 평생을 살아갈 대부분의 시민들에게 원어민 수준의 영어 구사 능력이 '공생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교육 목록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Posted by 정보돌이